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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더라

  • June 15th, 2019

  • 하루에 수없이 많은 일이 벌어진다. 아침에 출근하러 집을 나서 길을 걷다가 불규칙한 보도블록에 발을 삐끗할 뻔하다 무사히 균형을 잡아내고, 내 눈으로 날아드는 꽃가루를 피해 걸으며, 휴대폰으로 넷플릭스를 보는데 강한 아침 햇살에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 휴대폰을 들고 있는 각도를 이리저리 바꿔보지만 영 시원찮다. 아마 이렇게 적자면 한도 끝도 없이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. 하지만 사실 잠자리에 들며 '오늘 뭐했지?' 생각해보면 '출근해서 일하다 퇴근하고 저녁 먹고 집안일 조금 하다 하루가 갔구나'라는 요약본을 만나게 된다.

  • 추상화는 자연스럽다. 추상화를 거치지 않으면 처리할 데이터가 너무 많아 뇌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. 추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. 하지만 추상화의 레벨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.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'오늘 일 했다'라고 추상화해버릴 수도 있지만 '오늘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잘 모르는 다른 팀 누구누구를 만나 같이 먹었는데 이러이러한 대화 내용이 재밌었고, 그 후에 일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동료 누구가 친절하게도 도움을 줘서 잘 해냈고 나도 다음에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했다'와 같이 비교적 상세하게 추상화할 수도 있다. 이는 내 선택에 달린 것이다. 전자에 비해 후자는 에너지 소모가 크다. 하지만 똑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후자는 남는 게 많다. 깨닫는 점도 많고 일상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. 그렇게 하려면 에너지를 그만큼 사용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풍성함에 의해 도리어 에너지가 충전되기도 한다.

  • 바쁜 업무 가운데 빠져들며 아무 에너지 없이 일상을 두리뭉실하게 추상화해버리며 지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,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적은 글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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